좌절감을 다스리는 법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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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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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대니얼 고틀립은 심리학자로 서른세 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됩니다. 우울증과 이혼, 아내와 누나, 부모님의 죽음을 차례로 경험하며 둘째딸이 낳은 유일한 손자 샘이 14개월에 자폐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 글은 그가 손자 샘에게 들려주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편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좌절을 겪으며 살아간다. 너도 잠옷을 입고 싶은데 좋아하는 색깔의 잠옷이 없으면 화가 나지? 나는 바닥에 종이를 떨어뜨렸는데 손을 뻗어 집을 수 없을 때, 음식점에 갔는데 문 앞에 계단이 있어서 들어갈 수 없을 때 좌절감을 느낀다. 좌절감의 뿌리는 욕망이다. 욕망이 없으면 좌절도 없다. 너는 아직 어려서 네가 원하는 걸 당장 하지 못하면 떼를 쓴다. 욕망이 생기면 그 즉시 충족되길 원하는 것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른들도 자기가 욕망하는 것을 바로 이루고 싶어한다. 바닥에 떨어뜨린 저 종이를 지금 당장 줍고 싶어! 멋진 애인이 당장 생겼으면 좋겠고! 내 방광 기능이 돌아왔으면 좋겠어, 당장! 대머리는 정말 지긋지긋해, 머리카락이 지금 당장 났으면 좋겠어! 문제는 욕망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욕망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샘, 식욕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겠니?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은 욕망,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보살핌을 받고자 하는 욕망도 있고, 명예로워지고 싶은 욕망도 있다. 인간은 욕망덩어리인 셈이다. 자, 이제 중요한 질문을 할 때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욕망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욕망이 일어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욕망이 충족되지 못할 때 느끼는 좌절감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네 엄마와 이모가 어렸을 때 얘기다. 어린 데비와 앨리는 좌절감에 빠진 나를 보며 배꼽을 잡고 웃곤 했다. 쩔쩔매는 내 모습이 그저 우습기만 했던 것이다. 내가 휠체어를 탄지 얼마 되지 않아 익숙하지 않았을 때였다. 휠체어를 타고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코너를 제대로 돌지 못해 벽에 부딪힐 때였다. 휠체어를 타고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코너를 제대로 돌지 못해 벽에 부딪힐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가 나서 주먹으로 벽을 치며 “젠장!” 하고 소리를 쳤다. 나는 어린 딸들에게서 ‘감정 관리법’을 배웠다. 데비와 앨리는 내가 벽에다 애꿎은 화풀이를 할 때마다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빠가 또 꽈당했어! 아빠 좀 봐.”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벽에 부딪히고 나서 벽을 때리며 고함을 치다가 그런 나를 보고 웃는 딸아이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아빠가 또 꽈당했다.” 사실 벽에 부딪힌다고 해서 그리 나쁠 것도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뭔가 가르쳐주기 위해 벽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아주 화창한 봄날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뜰에 나가 혼자 산책하고 있는데 전동휠체어 바퀴가 그만 구멍에 빠져버렸다. 엔진속력을 최고로 높이고 앞뒤로 움직여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침 평일 한낮이어서 옆집에도 사람이 없었다. 부를 간병인도 없었다. 도와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기척이 없었다. 목청껏 소리를 치다가 좌절감에 사로잡혀 휠체어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세게 내리쳤던지 손에서 피가 났다. 피를 보고 깜짝 놀라서 다시 소리쳐 사람을 불렀지만 목소리마저 잠겨버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울고 난 다음, 나는 체념했다. 소리도 치지 않고, 휠체어를 주먹으로 내리치지도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벽에 부딪힌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들은 그 이전에도 지저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구멍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고 좌절감에 맞서 싸우느라 소리치고 주먹으로 내리치고 울고불고 했으니, 그 와중에 새소리가 들렸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누군가 빨리 와서 날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은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때로 그것은 곧바로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이 아닐 수도 있다. 그걸 받아들이고 싸움을 멈추자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샘, 내가 겪은 이 같은 과정을 너 역시 반복하는 걸 본다.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넌 화를 내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다가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까맣게 잊고 넘어간다. 샘, 생각해보아라. 네가 마구 울 때 느끼는 좌절감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평생토록 지속될까? 그렇지 않다. 난 네가 커가면서 마주치게 될 좌절의 순간들이 보다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그래야 네가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지 않고 평화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살면서 벽에 부딪히는 일을 피할 수 없다. 그럴 때, 어떻게든 평화를 찾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벽에 부딪히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벽으로 돌진하고 말 것이다. 출처 :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이문재 김명희 옮김 문학동네 |